군복무 시절, 종일 훈련을 받고 내무반에 들어와 할 일은 티비를 보거나 책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군인의 유일한 낙이었죠.

가끔 잡지를 볼 때가 있었는 데, 대부분이 패션잡지GQ였습니다.

(병사들이 휴가를 다녀오면서 사온 잡지들입니다.)

 

패션잡지 GQ는 몇페이지만 훑어봐도 블링블링합니다. 도저히 살 수 없는 물건들이

그득하기 때문입니다. 돈만 있으면 사고 싶은 럭셔리한 시계, 옷…

비싼 그림의 떡임에도 불구하고, 왜 수많은 군인들이 GQ를 보는 걸까요?

제대후 멋지게 꾸밀 자신의 스타일을 GQ를 보며 상상하며 만족하는 걸까요?

돈.

돈으로 스타일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믿게 만든 것은 미디어의 덕분이겠죠.

티비에서,신문에서, 잡지에서, 인터넷에서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연예인들의 패션 뉴스는 부르짖습니다.

그들처럼 입어야 멋지게 입는 것이고,

에지가 없으면 에누리없이 스타일에서 탈락입니다.

'진보한 패션은 박수받지만, 진부한 패션은 외면을 당합니다'

유명한 패션디자이너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젝트 런웨이의 유행어죠.

그리고

'외모가 형편없는 건 용서해도 스타일이 없는 건 용서못한다'라는 말도 있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패션에 투자를 해!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일본의 유명 스타일리스트이며, Style Bible이란 책을 쓴 오카노 히로시는

Style Bible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합니다.

 

비즈니스 패션에 관한 세미나에 강사로 초청받았을 때 일이다. 나는

40년 남짓 스타일리스트로 일한 경험을 살려, 내가 담당했던 상위 1%의

유명 인사들이 어떻게 자신을 연출하고, 상황에 맞는 적합한 몸가짐을

갖추려고 노력했는지 말하고 있었다.

"소니의 모리타 아키오 회장은 '고급 옷을 입으면 자신감이 생긴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좋은 재질의 비싼 옷은 움직임이 편하고 신체 특징을

한층 살려 주죠. 자신에게 딱 맞는 슈트를 고르려면 한번쯤 의상실에서

맞춰보세요. 자신의 신체 특징이나 행동 습관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테니까요."

이야기를 듣던 20대 초반의 한 청년이 손을 들었다.

"그럼 기성복으로는 안 된다는 말씀인가요?" 거금을 들여 슈트를 장만할

여유가 없는 저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물론 고급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멋스러워질 수 있어요. 기성복만으로도

대기업 사장을 접대하는 모임이나 고급 호텔에서 열리는 파티에 어울리는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지요. 다만……"

"다만?"

"다만, 저는 외모에 대한 의식 개혁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가 말하는 의식 개혁이 뭘까요? 그는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외모에 대한 가치관을 엿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대개 사람들이 보이는 멋에만 치중하는 반면, 성공하는 사람은 소품 하나를

고를 때도 다음 사항을 항상 염두에 둔다는 것입니다.

나의 역할은 무엇인지?, 차려입는 목적은 무엇인지.

 

위 두 가지 고민에 맞춰 자신의 개성을 살릴 때

외모에 대한 나만의 가치관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입니다.

(나에 대한 고민을 직시할 때 외모에 대한 의식 개혁이 일어난다는 것이죠.)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나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나를 모르면, 자신을 신뢰할 수 없고, 남에게 과감히 드러낼 수도 없습니다.

 

스타일이란 것은 바로 나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에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내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결단과 용기라는 것입니다.

 

 

'옷은 그저 걸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장례식장에 갈 때는 검은색 옷을 입는 것처럼, 옷차림은 일종의

사회적인 약속이자 사람의 지위나 신분, 성격을 은연중에 드러내 주는 하나의 상징으로

작용한다는 점은 동의할 거라고 생각해.

 

허나, 패션에 있어 우리 20대의 모습을 관찰해 보면 대다수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하지 못한 채 소비를 주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그러니까).

결국 일정 부분 돈에, 브랜드에 의존하게 돼. 그래서 난 브랜드 회사가

얄미워. 제품의 원래 가격보다 훨씬 더 큰 폭리를 취하는 게 얄밉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런 상상을 해 봤어. 브랜드 가치, 광고비, 유통비 등을 최대한 철약해서

이를 사회에 재투자할 수 있다면? 패션 쪽에서도 하나의 사회적 기업이 새롭게

나타날 수 있다는 거지. 컨셉은 싸고 질 좋으면서도, 이쁘게. 더불어 생태적이기까지

하면 더 좋지. (하략)'

 

- 대학생 유재영의 글, 우석훈의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中에서


Posted by 열린옷장

댓글을 달아 주세요